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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지면반영] 지역인들의 삶을 지탱하는 무궁화호를 지켜내고 싶습니다

nanaroa 2021. 10. 26. 17:18

  세상엔 추억거리로 남겨진 것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로 잊혀진 것들은 낭만으로 남겨졌습니다. 하지만 다수결이 만능이 아니고, 효율성이 늘 최선의 대안이 아니듯, 세상의 변화에도 추억거리로 남아서는 안되는 것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지난 8월, 한국철도는 무궁화호 운행을 감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2017년부터 2021년사이 무궁화호 열차운행은 36% 감축됐습니다. 버스조차 다지니 않는 곳에 무궁화호가 일정한 운행시간으로 하루에 네 다섯번만 오고 가도, 그 지역은 “살만한 곳” 이 됩니다. 무궁화호가 감축운행되면, 기차역 자체가 사라지는 지역도 다수 생깁니다. ‘무궁화호 감축운행’을 2G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던 시절처럼 “자연스러운 변화야”라며, 마냥 끄덕일 수 없었습니다.

  옥천에는 세개의 역이 있습니다. 옥천역, 지탄역, 이원역 입니다. 옥천역과 이원역에는 새벽마다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장사를 하러 가시는 할머니들과 출퇴근 하는 직장인, 대학과 학원을 다니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지탄리에는 ‘지탄역’이 있습니다. 이용객이 하루 5백명도 넘던 곳이었지만 점점 이용객이 줄었습니다. 결국 2007년 6월에 ‘무정차역’으로 지정되어 역이 사라지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2년 뒤인 2009년 지탄역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역이 사라진 후, 대전과 옥천을 오고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끊겨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증가했고, 주민들은 서명운동을 벌이며 목소리를 냈기 때문입니다. 이용객이 상대적으로 줄었을 뿐, 지탄역이 생업의 일부였던 사람들은 여전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무궁화호로 여행을 가고, 집에 가고, 대학에 다니고, 학원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가족을 만나고, 공연을 보고, 일을 하러 다닙니다. 기차를 타는 제 주변 친구들은 “오늘은 KTX탄다”라는 말도 종종 합니다. 무궁화호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늘상 이용하다, 가끔 기분 내는 식으로 KTX를 타는 친구들도 적지 않거든요. 무궁화호 운행감축은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주요 도시를 오고 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궁화호 감축운행은 도시가 아닌 지역의 역들과 간이역들에 노선을 끊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들은 타 지역에 가기 위해 기차를 몇 번이고 갈아 타야 하고, 역 자체가 사라져 만만치 않은 비용부담을 하면서 이동 해야합니다. 무궁화호가 지금보다 더 적게 운영되거나, 아예 정차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인들은 일상의 무너짐을 체감하게 되는 겁니다.

  기업의 논리만으로 무궁화호 감축운행을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무궁화호를 ‘사라져가는 추억거리’로 여기겠지만, 다른 보통 사람들에게 ‘무궁화호 감축운행’은 불안한 일상의 시작입니다. 효율만이 무궁화호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누가 말하던가요? 늘 기차는 안전, 사람, 소통에 가치를 두고 사람과 세상을 잇는 수단이라 배워왔습니다. 누군가는 말하더군요. 지역에 산다고, 시골에 산다고, 눈,코,입이 없는게 아니라고요. 무궁화호 감축운행에 반대합니다.

[사진설명] 무궁화호와 함께 살아온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표현한 작품.

 

박나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