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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공정이란 무엇인가

by 권 단 2021. 7. 1.

#1. 공정의 요체는 능력주의다. 기여에 따른 보상체계를 신봉하는 것이다. 그러나 ‘능력 급부 존엄성’ 체제가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공정을 앞세워 능력주의가 활개치는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사람을 죄다 경쟁 속에 갈아 넣기 때문이다. 승자는 자기착취로, 패자는 자기학대로, 경쟁은 승패를 막론하고 모두를 열패자로 전락시킨다. 인류역사에서 근 오백여 년 동안 세상을 지배해온 이데올로기이자, 체제이다. ‘노동의 신성함’에서부터 출발했던 이 ‘시민(부르주아)적 열망’은 급기야 측은지심과 같은 인간의 선험적 도덕감정마저 도착시키기에 이르렀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는 애교에 불과하고, 이제 “능력없는 자에겐 평등도, 권리도 없다”로 진화했다. 공정이란, 경쟁에서 이긴 능력자가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기실 능력도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기에 순전히 특정 개인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과연 우리가 부르짖는 공정의 실체가 무엇인가. 포스트 모던이든, 신자유주의든, 이 체제의 가공할 위력은 차별과 혐오를 공정의 이름으로 정당화하여 약자와 소수자를 단죄하고, 이게 외부에서 강요된 동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도덕감정에 의해 자발적으로 동의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공포스럽게 표출된다. 좀비는 단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2.자유주의가 타자와의 경쟁으로 나를 소진시켰다면, 신자유주의는 나와의 싸움으로 스스로를 번아웃시킨다. 이제 경쟁상대는 더이상 외부에 있지 않다. 자기와의 싸움은 죽어야 비로소 끝난다. 이 지경에 이르면 타자에 대한 불신으로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자기상실의 신경증 증세에 빠지게 된다. 물질적 결핍보다 자기상실은 아주 치명적이어서 회복이 불가능해진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누구나 신경증적인 증세를 보인다.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한다.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봉쇄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할수록 누적되는 하층민의 우울증과 피해의식은 엉뚱하게도 (가해자인)기득권층이 아니라, (동료 피해자인)사회적 약자를 향해 날을 세운다. 사회적 스트레스를 약자 공격으로 배설하는 것이다. 여기에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성공 신화를 내면화함으로써 ‘성공한 자’, 또는 기득권층을 상상으로나마 자기 동일화하게 되면 그 양상은 더 격렬해진다. 그래서 양극화 사회에서 개인의 사회적 존재 양태는 ‘열등감’ 또는 ‘우월감’으로 나타날 뿐이다. 열등감은 추격적 경쟁에 탈락한 사람들의 존재 양태이고, 우월감은 경쟁 과잉으로 인한 자기 소진의 존재 양태이다. 강자의 갑질이든 약자의 무력감이든 소외된 삶이긴 매일반이다. 사회적 유대가 밑둥부터 깨져나감으로써 소외를 더 재촉하고 마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인권세미나> ‘혐오와 도덕적 착란’ 중에서

 

김형완님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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