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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지면반영]내 방에 울리는 심장 고동은 한 사람의 몫

by 뵤지성 2021. 12. 20.

■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 책을 읽고
  '오직 두 사람'이라는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어찌 보면 작가 때문이었다. 1학년 2학기 자유 학년제 시간에 읽었던 책인 '살인자의 기억법'의 작가 김영하. 나는 살인자의 기억법이란 책을 읽는 동안 큰 흥미를 느꼈다. 책을 끊기는 느낌 없이 쉽게 술술 읽었지만,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난 후 남은 여운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마음에 들었고, 김영하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 2학년 2학기 수행평가 독서 추천 목록 중에 김영하 작가의 이름이 보여 책 '오직 두 사람'을 읽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김영하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여태껏 내가 읽어본 것들은 모두 그랬다.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해했다'라는 말은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상황, 줄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닌, 이 이야기의 주제와 의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은 7개의 단편소설을 모아 출판한 책이다. '오직 두 사람',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부터 모든 소설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보단 이 책 전체에 대한 감상평을 먼저 써보는 것이 나의 생각들을 표현하기에 적합할 듯하다.

■ 이제는 오직 두 사람만이 사용하는 언어
  '오직 두 사람'은 이 책의 이름이자 첫 페이지를 여는 이야기다. 그리고 7개의 단편소설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왜 책의 제목이 오직 두 사람일까? 오직이라면 그냥 한 사람인 게 어울리지 않을까? 셋 이상의 사람이면 안 되는 걸까? 아예 다른 것이 제목이 된다면? 나의 이러한 의문점은 책의 첫 문단에서 해결됐다.
  소수 민족의 모국어, 지금은 오직 두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언어. 어쩌면 미래에는 단 한 사람만이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조심스러워지고 함부로 말을 건넬 수 없게 된다. 한 사람이 먼저 떠나게 된다면 그저 고독 속에서 외계어나 들으며 살아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 하나가 된 둘, 둘이 된 하나
  애틋해보이지만 사실상 망가진 부녀관계, 그리고 결국 홀로 남겨진 딸. '오직 두 사람'은 딸 둘, 아들 하나를 가졌지만 오직 큰 딸만을 편애하던 아빠와 끝내 홀로 남겨진 딸의 이야기다. 
  아들이 하나 있는 평범한 3인 가족. 부모의 과실로 마트에서 유괴당한 아들 성민과 그 후 미쳐버린 아내, 그 아내를 돌보는 듯하지만 오히려 아내에게 의지하는 남편. 그래서 오직 두 사람만이 남은 가족이 되었다. 그로부터 11년 후, 아들 성민이 기적적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미쳐버린 아내는 세상을 떠나버리고 성인이 된 성민은 떠나버렸다. 오직 둘만이 남은 가족. 일방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비이상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평범함이란 얼마나 쓰라릴까. 

■ 여운이 많이 남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책이 정말 어렵게 느껴진다. 분명 쉬운 내용 같지만 작가의 의도를 찾는 것이 마치 수능 문제라도 보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오직 두 사람'이라는 책은 많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나는 분명 책을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무슨 여운이 남을까 싶었지만, 내가 굳이 이 책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나는 지금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닌 글을 읽을 뿐이었고, 그 글자 속에 새겨진 의도들은 내 머리가 아닌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 지구의 오직 한 사람 '나'의 언어를 이해하라 
  나는 한 사람이다. 나는 지구에 사는 한 사람이다. 나는 지구에 있는 아시아 대륙에 있는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쭉 살아왔고 그러므로 나는 모국어인 한국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말이 안 통할 때가 있다. 분명 나와 대화를 나누는 그 사람도 나와 같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그 이유는 나의 언어와 그의 언어는 같지만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곳에 놓여 같은 공기를 마시며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화할 수 없다. 우리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공간적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말이다. 나는 가끔 나와의 대화에서도 쉽게 지친다. 나는 잠을 자고 쉬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공부해야 한다며 버틴다. 나는 씻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핸드폰이나 좀 더 하자며 버틴다. 나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세계에 살지만 그 세계 또한 분리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함께하지만 혼자이다. 지금 내 방에 울리는 심장 고동은 한 사람의 몫이다. 
  나는 '책을 완벽히 이해했다'는 말을 믿지 않고 '작가가 과연 자신의 책을 이해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책을 읽곤 한다. 글은 누구에 의해 무슨 의도로 쓰였든 그 글을 읽은 모든 이가 똑같은 해석을 내보이진 않는다. '만약 내가 쓴 글처럼 나와 내가 이야기를 나눌 때 평생토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립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나는 행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낸다. 나라고 해서 나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나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한평생 외로우리라.

 

오수영(옥천여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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