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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31호]글쓰기는 나의 동행자

by 뵤지성 2022. 3. 8.

 어떤 글을 적을까? 흰 종이를 펼치고, 한글과 컴퓨터를 켤 때, 가장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이다. 언제나 그렇듯 첫 줄을 적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글을 쓸까? 아니 저 글을 쓸까?' 볼펜으로 턱을 두드리고, 깜박거리는 마우스 커서를 볼 때면 여러 생각이 들면서도 아무 생각도 안 떠오른다. 모순된 말이지만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어린 시절 나에게 글이란 '이상'이었다. 학교생활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사람들과 섞이지 못해 헛도는 어린 나에게 친구는 무슨, 어울려서 놀 같은 반 학생조차 제대로 없었다. 수업 시간에 둘씩 짝을 지으라고 하면 혼자 남겨지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나는 항상 외로웠고 이상의 나와 현실의 내가 다르다는 사실과 매 순간 마주쳤다. 어린 내가 바라던 나는 어느 영웅들 속 리더와 같이 주위 동료들을 이끌고,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의 나는 이끌 친구부터 없었고, 있었어도 그럴만한 그릇이 못됐다. 내 마음은 쉽게 상처 입었고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컸다. 그런 나에게 가장 빨리 이상을 실현할 수 있던 방법이 바로 글이었다. 글 속에서의 나는 내가 바라는 모습의 사람일 수 있었다. 동료를 이끌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 말이다. 나는 그렇게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나에게 글은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잘하는 일은 달리기와 노력뿐. 공부도 사교성도 부족한 나는 어느 날 국어 숙제로 한 편의 시나리오를 써서 제출했다. 모둠 숙제에서 시작한 그 시나리오는 왕따에 대한 글이었는데 지금 읽어보면 모래로 지어놓은 성처럼 허술한 시나리오다. 맥락도 없고 결말은 또 얼마나 갑자기 맺어지던지. 찾아서 읽으면서 낯이 뜨거웠다. 그러나 당시에는 담임선생님께 칠판 앞으로 불려가서 큰 칭찬을 받았었다. 그때 얼굴이 얼마나 뜨겁고 어깨가 높이 올라갔었는지. 누군가의 인정과 칭찬에 메말라 있던 열두 살의 나에게는 목마름을 달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중학교로 올라가서 글은 수단에서 나를 지킬 자기최면이 되었다. 사방에서 얼굴만 마주치면 꿈이 뭐냐고 묻기 시작하는 시기가 있다. 명절과 지인들의 만남도 모자라 심지어는 시장에서까지 내 꿈을 물었다. 어른들은 인사 다음으로 할 말이 없으면 대부분 장래에 관해서 묻는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 질문이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알지만, 꿈이 불분명했던 아이였을 때는 뾰족한 바늘과도 같은 질문이었다. 그 나이 때 사람들이 그렇듯 내게도 습관적으로 답할 무언가가 필요했었다. ‘아직 없어요.’,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 대신 답할 무언가가 말이다. 그래서 중학생의 나는 언젠가 칭찬을 받았던 일을 떠올리며 작가가 될 거라고 대답했다. 누군가가 물을 때마다 자기소개서에 적어야 할 때마다 그렇게 대답했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내가 작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최면인지, 목표인지도 분간하지 못했다. 지금도 분간을 하지 못한다.


 동급생들과 어울려보려고 노력하면서 글은 나의 말이 되었다. 지금까지 또래와 대화를 자주 나눌 기회가 없었던 나는 사람들 앞에만 서면 상대가 친구라고 해도 머릿속이 새하얘지기 일쑤였다. 하려고 했던 말이 있었는데 대화만 시작하면 떠오르지 않아서 난감했고, 긴장을 하면 표정이 무표정으로 변해서 이런저런 오해를 받기 쉬웠었다. 이 때문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을 걸기 전에 다음으로 이어갈 이야기와 돌아올 물음에 대한 답변을 상황별로 생각해두는 게 내 습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사서 세상을 힘들게 사는 아이였던 것 같다.


 그랬던 나에게도 유일하게 내 이야기를 떨지 않고 말할 방법이 있었으니, 그 방법이 바로 글이었다. 뜸을 들여도 상대를 기다리게 할 필요가 없고, 다 쓰고 나서 두세 번 살펴보기 때문에 말실수를 할 일도 없었다. 또, 한 번 입으로 뱉는 말보다는 손으로 적는 글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나는 당시에 편지 쓰기를 좋아했었고, 지금까지도 좋아한다.

 여담으로 가족들에게 힘든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했을 때는 내 아픔을 짧은 소설로 적었던 적도 있다. 나와 상황을 동식물과 사물에 빗대서 사는 게 힘들다는 말 대신 전했었다. 죽지 못해서 살았을 때, 글은 나에게 연명 줄이었다. 당시 한 친구와 함께 소설을 썼었는데. 그때는 하루하루를 친구와 쓰는 글의 다음 장면을 읽고 싶어서, 이 캐릭터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싶어서, 죽기 전에 완결이 보고 싶어서 견뎠었다. 그때의 글은 나의 산소호흡기였다.

 5년간 소설을 쓰다가 글은 나에게 고통이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를 살게 하는 연명 줄이었다는 사실이 새까맣게 잊힐 정도로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즐거워서 쓰기 시작한 글이었으나 어느 순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며 고통은 시작되었다. 글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글 속에 반복되는 표현과 문장이 많다, 맞춤법과 문법이 어렵다, 출판된 책과 내 글을 번갈아 읽어보니 내가 쓴 글은 소설 같지 않다 등 고통은 여러 종류로 내 숨통을 짓눌렀다. 나는 한순간에 글을 쓰는 자유를 잃어버렸다. 쓰고 싶은 글을 떠올려보기도 전에 글의 목적을 정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꼈고. 목표를 정하려다가 기력을 다해서 글은 써보지도 못하고 여러 번 나가떨어졌다. 겨우 글을 쓰기 시작하면 같은 단어, 비슷한 문장이 나올 때마다 멈춰 섰다. 초고를 완성하기도 전에 다른 말로 대체하려고 머리를 쥐어짜다가 끝에는 두통과 함께 연필을 내려놓았다. 앞에 적은 문장들을 반복하여 다시 읽어보다가 하루가 끝나버린 날도 허다하다.

맞춤법과 문법은 또 얼마나 고통이었는지. 나는 맞춤법이 헷갈릴 때마다 그냥 적지 못하고 사전을 찾아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문법에서도 여러 고통이 있었으나 하나만 콕 집어 보자면 ‘은/는’과 ‘이/가’가 가장 괴로웠다. 둘의 정확한 차이를 몰라서 몇 달간 글을 읽으면 은/는/이/가만 보였던 게 선명히 기억난다. 국어 시간에도 발휘하지 않았던 오기로 교열자가 쓴 책과 국립국어원을 뒤지며 이해할 때까지 배웠던 걸 떠올리면 나도 참 지독했다.


그렇지만 역시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웠던 건 내 글이 소설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쓴 글이 소설이다.’라는 법칙은 없었으나 아무리 읽어보아도 내가 쓴 글만큼은 소설처럼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다른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내 글과 비교되어서 모든 독서를 중단했었다. 대사가 많아서 시나리오처럼 보이는 걸까? 지문이 짧아서 소설처럼 안 보이는 걸까? 글의 진행 방식이 소설보다는 만화에 가까운 걸까? 등등 잘못된 점은 내가 의심하는 만큼 나왔다. 한참을 고민하며 방법을 찾고, 작법서를 읽고, 인터넷과 유튜브를 파헤쳤다.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온갖 노력을 했다. 억지로 글을 써보기도 하고, 인풋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영화를 왕창 시청하기도 했다.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루틴을 만들어보기도 했으며 나와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강의를 듣고 위로받기도 했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글이 안 써진다는 말을 인사처럼 했다. 이건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정말이지 나는 몇 년간 내가 할 수 있는 발악이란 발악은 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불현듯 깨달았다. 잘 쓰지 않으면 되는구나. 거창한 목적이 없어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되는구나. 수정은 초고를 완성한 뒤에 하면 되는구나. 초고부터 완벽할 필요가 없구나. 내가 작가가 되더라도 맞춤법과 문법이 틀려도 되는구나. 작가에게는 교열자가 있구나. 내가 쓴 글을 독자로서 읽지 않으니까 소설처럼 안 보이는 거였구나. 작가로서 읽어서 원고처럼 보이는 거였어. 그간 찾아본 비슷한 위로들로도 해결되지 않았던 고통이 한 번의 번쩍임으로 해결되었다. 결국,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백 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 겪어봐야 아는 법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글은 수필이든 소설이든 기사든 어떤 부문을 쓰든지 자유롭게 쓰면 된다는 거다. 중요한 건 글에 대한 재미와 열정을 잃지 않는 거다. 잘 쓰는 건 별개의 문제다.


 최근에 나에게 글은 여전히 수단이자 자기최면이고, 말이며 때때로는 고통이다. 그러나 글은 이제 나의 동행자다.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다 쓸 때까지 글은 나와 함께할 거다. 분명 앞으로 인생을 살다 보면 글은 다양한 대답으로 나에게 정의되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려고 한다.


 이 글이 나처럼 글을 쓰는 누군가 또는 비슷한 일로 방황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서진 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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